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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국제보건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세계시민 또는 코스모폴리탄의 기원, 자격, 과제 (신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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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1.05.04 09:11:25
 수정일 2011.05.04 09: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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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국제보건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 세계시민 또는 코스모폴리탄의 기원, 자격, 과제 

신영전(한양대)

인터넷에 '세계시민(world citizen)' 또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을 쳐보면 많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스스로 세계시민 여권을 만들어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던 게리 데이비스(Garry Davis, 1921-)(물론 그는 종종 감옥으로 직행해야 했다), “나의 나라는 세계다. 모든 인류가 나의 형제이며 나의 종교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미국의 건국공신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라고 외쳤던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도 세계시민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세계공통어인 에스페란토 운동을 전개했던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Zamenhof, 1859-1917)도 세계시민임에 틀림없다. “권력을 가진 국가가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세계정부의 건설 없이 인류와 문명의 구원은 없다”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도 코스모폴리탄의 족보에 올라있다. 이렇게 세계시민의 기원을 쫒아 올라가면 그 끝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원하는 것을 물었을 때 해나 가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323)와 ‘만인의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도 만나는데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은 아테나 시민도 그리스 국민도 아니라 ‘세계시민’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세계시민’은 매우 오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내에서 국제보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국경을 넘는 인류애나 인도주의’이다. 실로 코스모폴리탄이즘의 핵심적인 이념과 일치한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조국에 손해가 되더라도, 또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더라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흔쾌히 답하지 못한다. 물론 이 질문에 기꺼이 “예”라고 대답하는 코스모폴리탄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국제보건부문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 모른다. 내가 만났던 국제보건관련 전문가 10명 중 8~9명은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개인의 종교적 신념 하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국제보건 영역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조국에 손해가 되거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면 협력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그런 활동을 ‘국경을 넘는 인류애나 인도주의’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 역시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해에 기반을 둔 국가 간 협력과 지원이 빈곤국의 요구와 이해를 적절하고 공평하게 반영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현실에서 국제보건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특별히 세계시민적 입장에서 국제보건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세계시민주의적 입장을 떠난 모든 국제보건활동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멋있고 때론 필요하지만 그 실효성이 매우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일은 우선, ‘국경을 넘는 인류애나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을 구별하는 일이다. 특별히 후자이면서 전자인 양 포장되는 것들의 실체들을 밝혀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스스로의 오독을 넘어서는 것도 포함한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국제보건관련 활동들을 가급적 전자의 성격을 가지도록 견인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세계시민이 있다. 바로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다. 그는 국제현실을 국가와는 다르게 헌법과 같은 자기통제장치를 가지지 못한 ‘야만의 무법상태’로 간주했고, 따라서 영구적인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한 국가 내에서 요구되는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높은 도덕성’이 정치적 이념의 좌우에 상관없이 세계시민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격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라기는 현실의 엄정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계시민의 정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더 많이 생겨나 국제보건의 골간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국경을 넘어서는 국제보건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세계시민 중 한 사람인 구루 니티아 차이타냐 야티(Guru Nitya Chaitanya Yati)의 말을 전하고 싶다. 

“세계시민은 진리의 기반, 보편적 지식, 모든 가치의 근원적 토대에 복무한다.”
 
(2011 한국국제보건학생연합회 연간보고서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