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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11호] 의약분업 개혁: 한일 비교를 통한 시사점 (정형선,연세대)
 작성자(아이디) hpwebzine  작성자(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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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0.06.17 14:50:43
 수정일 2010.06.17 14: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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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통신]

 

[심층분석 11호]

 

 

의약분업 개혁: 한일 비교를 통한 시사점

 

 

 

 

 

정형선 연세대

 

이 글은 Health Policy 93 (2009)에 수록된 논문 ‘Pharmaceutical reforms: implications through comparisons of Korea and Japan’을 요약한 것입니다. 원저가 경치 경제학적 관점에서의 기술적(descriptive)인 논문이기 때문에 요약된 몇 쪽만으로는 의미 전달에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가능한 한 원문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의약분업을 둘러싼 역사적 진행 과정과 이해 당사자들 간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기를 기대합니다.

 

1. 서론

 

어느 정도 사회제도의 틀을 갖추고 있는 국가들에게는 ‘개혁을 있게 하는 것(making reforms happen)’ 자체가 공통의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을 하는 것(getting reform right)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의사가 의원 내에서 처방과 조제를 동시에 할 수 있었고 약사도 약국 내에서 간단한 진단과 조제를 하는 관행이 있었다. 한국은 2000년의 의약분업 개혁으로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를 하는 역할 분담이 법적으로 강제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임의 분업’의 관행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사한 법률 구조와 역사 문화적 배경을 지니며 똑같이 ‘미분업’ 상태에 있던 두 나라가 21세기에 들어서 서로 달라진 것이다. 본고는 그러한 차이를 특히 정치 경제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2~3. 한국과 일본의 의약분업 개혁 과정과 결과

 

(두 나라의 개혁 과정과 결과에 대한 기술은 지면 관계상 아래 표로 대체함.)

 

한  국

일  본

1953 약사법 제정

1977 의료보험 시작

1984 목포시 시범 사업 실시

1989.7 전 국민 의료보험

1989.10 약국 의료보험

1993 한약 분쟁

1998.5 분추협 구성

1999.5 5‧10 합의 성립

1999.11 의사 스트라이크

1999.12 약사법 국회 통과

2000-2001 의사 전국 파업 계속됨

1874 ‘의제’(의료 제도) 제정

1889 ‘약률’(약사 규칙) 제정

1891 약제사의 의약분업 청원

1927 의료보험 시작

1956 소위 ‘의약분업법’ 시행

1961 국민 개보험(전 국민 의료보험)

1972 의약품 ‘처방 기본료’ 도입

1974 원외 처방전료 60엔에서 500엔으로 인상

2007 의약분업률 57.2% 달성(1974년 1%)

 

 

 

4~5. 정치 경제적 고찰 및 결론

 

협상 및 정치 전략(negotiation and political strategies)의 차원에서 볼 때 윈-루즈(win-lose) 방식보다는 윈-윈(win-win) 방식으로 이슈가 구축되는 경우 협상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의 경우는 아예 초기부터 의사의 조제권을 인정하고 약제사의 간단한 진단에 따른 조제와 OTC (over the counter) 의약품의 판매권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윈-윈의 상황을 만들었다. 덕분에 부분적인 개혁은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다만 근본적인 개혁은 그만큼 멀어졌다. 한국의 경우 개혁의 주도 세력들이 강제적 의약분업의 시행에 따라 기득권을 잃게 되는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진찰료와 처방전료 인상에 동의했다. 이는 강제 분업이라는 성과의 대가로 의사 측에게 기득권 상실을 보전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윈-윈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value-creating) 노력이었다. 한편으로 의약분업 개혁에는 이해 당사자 간의 ‘value-dividing conflict’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개혁 주도 세력들은 원칙에 바탕을 둔 협상(principle-based negotiation) 전략을 사용했다. 시민 사회 단체가 5․10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그 결과이었고 이는 개혁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의약분업 개혁과 관련된 경기자(player)로는 정치 집단, 관료 집단, 이익 집단(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 등), 시민 사회 단체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정치권력(political power)의 핵심은 단연 대통령이다. 한국에서는 의약분업 개혁의 진행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정치권력의 핵심의 입장에 서서 개혁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의지(position and commitment)를 표명함으로써 개혁을 성사시켰다. 반면에 일본은 정치권력의 핵심이 분명하지 않다. 내각의 수반인 수상도 각 정파의 타협의 산물이다. 특히 의약분업과 같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슈를 주도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정치적 리더십은 생기기 힘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의료 공급자들은 모두 의약분업의 당위성 자체는 대체로 인정해 왔다. 약사 측이 의약분업 개혁에 보다 적극적이었고 의사 측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점도 같다. 하지만 일본의 약사 그룹은 한국의 약사 그룹보다 의사 그룹을 상대할 힘이 현격히 약하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인력 구성과 사회적 영향력 등의 면에서 의사들의 입지가 압도적으로 크다. 강제 분업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시되는 상황이 지금까지 통할 수 있었던 것에는 양 국가의 시민 사회 단체의 역할의 차이도 한몫했다. 한국의 의약분업 개혁 과정에서 시민 사회 단체의 역할은 지대했다. 대통령 공약 100대 과제에 의약분업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의약분업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생기게 했으며 의약분업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는 의사협회, 약사회 등의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 도출에 큰 역할을 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의약분업 개혁의 과정에서 시민 사회 단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가장 강력한 이익 집단인 일본의사협회와 상대적으로 미약한 이익 집단인 일본약제사회와의 간극을 보충하면서 이를 사회 운동 차원에서 추진해 나가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2000년도에 관습, 문화, 행동 양식을 일거에 바꾸는 급진적 개혁이 시도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강제적 의약분업’이 제도로, 관행으로 정착되고 있다. 1953년 약사법이 성립된 이래 모든 이해 당사자가 의약분업의 원칙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못한 만큼, 의약분업을 제도화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성공으로 평가된다. 의약분업의 원칙이 서양 의학에 있어서 당연시되고 있듯이 최소한 서양 의학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맞다. 다만 한국의 의약분업 제도는 이제 기본만 형성된 것이고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일본 모두 개혁은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