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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11호] 의약분업 10년,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남은 과제들 (홍춘택,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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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10.06.17 14:53:40
 수정일 2010.06.22 15: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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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통신]

 

[심층분석 11호]

 

 

의약분업 10년,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남은 과제들

 

 

 

 

 

홍춘택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1.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했던 이유

 

2000년 7월의 의약분업 시행은 건강보험 도입 및 통합과 더불어 한국 근대 보건의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보건의료제도 개혁이었으며, 의사들의 폐업이라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제도였다.

폐업 등 의사들의 강한 반발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의약분업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시행 주체인 의사와 약사는 물론이고 시민사회까지 참여해 합의를 거친 제도였다.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시행시기를 법에 적시한 이후 의사와 약사가 모두 참여한 시행방안 합의만 3차례가 이뤄졌다. 1999년 의약단체는 시행시기를 1년 연기하는 조건으로 시민사회단체를 합의에 끌어들여 최종 합의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세부 시행방안을 세우는 실행위원회에 모두 참여하였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에는 시민단체를 배체한 채 의·약·정 3자가 다시 추가 합의안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의사들의 합의와 반발, 재합의 등 좌충우돌 행태가 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략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약분업 방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고 합의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고 어려운 합의 과정과 결국에는 의사들의 폐업 사태를 겪으면서까지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2000년 이전, 무질서와 부조리가 만연한 보건의료

지금과 달리 2000년 이전에는 병의원에서도 투약을 받고 약국에서도 진료를 받는 등 의사와 약사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러한 무질서는 의사와 약사는 물론이고 당시를 살아가던 대다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환자들은 비용만 지불할 수 있다면, 간단한 감기약부터 항암제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원하는 약을 병원, 의약, 약국 어디서든 처방받거나 구입할 수 있었다. 국민들이 이렇듯 익숙하고 또한 편리한 관행과 결별하고 의약분업 시행을 추인했던 이유는 무질서가 일으키는 문제가 너무 크고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직능 역할 미분리라는 무질서는 의사와 약사 등 보건의료 직능간의 무한경쟁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데, 1993년부터 3년여 간에 걸쳐 일어난 한약분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7년 의료보험 통계를 보면 의원은 2억 9천만건, 약국은 1억 9천만건 이상을 청구하고 있었는데, 전문의약품 판매를 제외한 약국의 공식적인 청구분이 전체 청구의 2/5를 차지하였다는 점은 의약사간 직능 갈등이 매우 심각하게 내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갈등들은 의약분업 추진 과정에서 상호 직능에 대한 불신과 폄하로 자주 표출되었다.

다음으로 의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으로 이로 인한 국민 건강의 훼손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률은 70~77% 수준으로 캐나다, 미국, 영국 등에 비해 6~10배 높았다. 또한 처방전이 공개되지 않아 환자들은 자기가 어떤 약을 복용하는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게다가 항암제를 포함한 모든 의약품을 언제든지 구입해서 복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의약품의 중복 복용, 오용과 남용, 이로 인한 건강의 손실을 매우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의약품 유통 부조리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병의원과 약국은 제약회사나 도매상에게 의약품을 공급받을 때 정부 고시가(보험약가)보다 50% 이상을 할인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랜딩비·리베이트비 등 제약회사에게 의약품 처방 대가를 받는 일도 만연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대행 청구 등 부당 청구의 만연, 불투명한 병의원 경영상태, 저급한 의약품 품질, 영세한 제약회사와 도매상 난립에 따른 의약품 유통의 혼란 등 다양한 문제들이 때 마다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일이 많았다.

 

2) 의약분업 제도 도입의 의미와 목적

의약분업은 본시 의사와 약사의 제자리 찾기라는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우리가 경험했던 의료 현실은 의약분업을 단지 의사(의료기관)와 약사(약국)의 역할분리를 통한 오남용 억제라는 차원을 넘어 제약회사 구조조정, 유통 현대화 및 투명화, 의약품 품질 향상, 수가 정상화 및 병의원 경영투명화라는 다양한 의료개혁 과제들을 포함하게 만들었다. 2000년의 의약분업은 의사(의료기관)와 약사(약국)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이었고, 넓은 의미에서는 의약품의 생산부터 최종 사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근대화·합리화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의약분업 추진의 목적도 좁게는 의·약사 역할 정립을 통해 소비자의 (전문의약품) 자가 투약 및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 주사제·항생제·스테로이드제 오남용 및 불필요한 과다투약 억제 등 의약품 오남용 방지 및 처방·투약 합리화뿐만 아니라, 의약품 유통비리 근절 및 유통 구조 개혁, 의약품 품질 향상을 통한 의약품 산업 구조조정과 수가 정상화를 통한 병의원 경영 투명화를 포괄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약제비 절감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하였다.

 

2. 의약분업 도입의 성과와 한계

 

1) 의약분업 제도의 성과

 

① 의·약사 간 역할 정립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분명하게 분리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의사와 약사라는 직능의 분업이 아닌 병의원과 약국이라는 기관의 분업이라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의약사간 담합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의약품 처방·투약에 따른 경제적 이윤 추구 동기를 제도적으로 배제하였다. 이 결과 의사들은 진료와 처방, 약사들은 조제와 투약이라는 본래 역할을 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② 오남용 억제 효과

오남용 억제 효과는 몇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은 환자의 전문의약품 자가 구입을 제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임의적인 전문의약품 구입 복용이 없어진 효과이다. 또한 전문의약품 비중을 의약분업 이전 40%에서 의약분업 이후 60%로 늘려 임의 복용에 따른 오남용을 최소화하였다.

다음으로 처방전을 공개함으로써 나타난 오남용 억제 효과이다. 환자들은 자기가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 어떤 효과를 내는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이에 따라 같은 성분이나 같은 효능의 약을 중복해서 복용하는 것을 줄일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의사와 약사가 자기 직능에 충실함으로써 나타난 오남용 억제효과인데, 의약분업을 통해 처방 내용을 이중 점검함으로써 가능해 진 부분이다. 이는 약제 적정성평가나 현재 시범사업 중인 DUR과 같이 의약품의 적정 사용을 유인하는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오남용 억제 효과는 항생제 사용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국에서 전체 항생제의 48.7%가 소비되었지만, 이를 차단하는 의약분업을 실시함으로써 전체 항생제 사용량이 약 30% 감소였다. 의약분업을 통해 의사의 항생제 처방도 2000년 0.90개에서 2001년 5월 0.79개, 2002년 5월 0.69개, 2004년 5월 0.51개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전체 처방전 중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처방전의 비율도 2000.5월 54.7%에서 2004.5월 38.8%로 감소하였다. 주사제와 스테로이드 제, 다제 처방 등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③ 의약품의 품질 향상

의약분업 방안 중 대체조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의약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모든 경구 의약품에 대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는데, 이를 통해 의약품의 안정성과 품질이 크게 향상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의약품의 품질 관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여 DMF, c-GMP 등 의약품 생산 및 품질 관리 제도를 선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2) 의약분업의 한계

 

① 의약품 비용 절감 효과 미비

의약분업 제도를 도입하면서 약제비 절감을 기대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의사와 약사에게서 처방을 늘려야할 경제적인 이윤동기(의약품 구입 시 발생하는 할인과 할증)를 제거하면 처방이 의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 의사들이 약사에 비해 더 의학적인 처방을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약제비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의약분업이라는 제도요인 이외에도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의약분업 제도 요인은 비제도권의 의약품 사용을 제도 내로 포괄하는 데 따른 비용으로, 이는 1999년 12월 약가 인하 분 8천억 원을 의사와 약사에게 수가로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제도 도입 비용은 불가피한 것이기는 하지만, 2000년 의사 폐업을 거치면서 4차례의 추가적인 수가 인상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던 부담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는 의약분업 이후 처방일수가 늘어나고 고약가 처방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인데, 이는 의약분업 자체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고령화와 만성질환자의 증가와 같은 자연증가 부분과 더불어 1999년 7월의 수입 의약품 보험급여 적용(A7 약가 기준 도입)과 2000년 7월의 보험급여일수 제한 폐지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의약분업 제도 자체로는 약제비 절감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는 점이다. 추가 조처가 필요했는데, 직접적으로 약제비 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인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2006년에야 발표되었다. 또한 의약분업 이후에도 리베이트라는 경제적 이윤동기가 계속 남아 있었다.

 

② 의약품 비리 척결 효과 미비

의약품을 처방 투약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이윤동기를 제거하는 것은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11월의 약가인하-수가보전을 연동한 실거래가 제도 도입은 의약분업 도입을 앞두고 의사들의 저항을 초래한 결정적인 사건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 존폐가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실거래가를 확인할 실질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에 약가 인하 효과는 미미한 반면, 그 허점을 이용한 리베이트는 계속 남아있다. 의약분업 도입으로 그 이전에 의원과 약국에 만연해 있던 할인·할증이라는 의약품의 음성적 뒷거래는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병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리베이트 관행이 의원과 약국으로 널리 퍼짐으로써 의약품 비리는 계속 온존하고 있다.

올 들어 리베이트 쌍벌죄와 저가구매 인센티브제가 시행되지만, 여전히 정부에게 실질적인 조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는 의문이다.

 

③ 병의원 경영 투명성 확보 미비

1999년 약가 인하 분 8천억 원을 의약사에게 수가로 보전하는 과정에서 병의원 경영 투명화 방안이 합의되었지만, 그 이후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3. 남은 과제 그리고 더 가야할 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의약분업은 법적인 시한 때문에 또한 의약품 관련 제도의 합리화라는 사회적 요구 때문에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제도였다. 또한 단순한 의사와 약사의 직능 정립을 넘어 의약품 사용과 관련된 제도 전반을 개혁하는 내용들을 포괄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이후에만 4차례에 걸쳐 합의안을 만드는 등 사회적 합의 과정도 충실히 이행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일은 아니었다.

제도 시행 후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의약분업 제도가 당시의 시행 목적들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할 정립을 통한 오남용 방지와 의약품 품질 향상이라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하였지만, 약제비 절감과 의약품 유통 개혁, 병의원 경영 투명화 등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외에 성분명 처방, 의약분업 협력 위원회 구성, 처방전 2매 발행 등 의약분업의 남아 있는 과제들은 2000년의 시대적 요구와 보건의료제도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남겨진 과제들을 실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10년 전의 합의문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보건의료의 조건 속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10년 전의 합의문에 얽매인다면 의약분업은 보건의료개혁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 이후 건강보험 정책의 변화(보장성 확대, 약제비 적정화 등) 이외에 보건의료정책이라 할 만한 것이 실시되지 않았음을 직시해야 한다. 공공의료 강화, 의료전달체계 정립, 건강보험 지출구조 개혁 등 많은 과제들이 10년 전 그대로 남아 있다. 의약분업의 정착과 남은 과제의 실현은 다른 보건의료개혁과제들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포괄되어야 한다.